📜 목차
- 애굽에서 태어난 히브리 민족: 고통의 시작
- 잊혀진 하나님, 그러나 사라지지 않은 약속
- 두 왕 사이의 갈등: 야훼 대 바로
- “하나님이 그들의 신음을 들으시고” (출 2:24)
- 출애굽기는 창세기의 후속편이다
- 신약과의 연결: 예수의 탄생과 모세의 구조
- 끝나지 않은 이야기, 오늘을 향한 부르심
- 에필로그: 하나님은 우리 고통의 기억자
1. 애굽에서 태어난 히브리 민족: 고통의 시작
출애굽기는 창세기의 마지막 장면을 바탕으로 시작합니다. 야곱과 그의 아들들, 그리고 요셉을 통해 애굽으로 이주한 이스라엘 가족은 시간이 흘러 “생육하고 불어나 번성하여 온 땅에 가득하게” 됩니다 (출 1:7). 생육과 번성, 창세기에서 하나님이 인간에게 명령하신 그 복이 드디어 실현되는 것처럼 보였습니다. 그러나 이 축복은 이방 땅에서 고통으로 바뀌고 맙니다.
“요셉을 알지 못하는 새 왕이 일어나 애굽을 다스리더니” (출 1:8)
성경의 이 한 구절은 거대한 전환점을 의미합니다. ‘요셉을 알지 못한다’는 것은 단순한 무지 이상의 것입니다. 이는 정치를 넘어선 신학적 선언입니다. 기억이 사라질 때 언약도, 정체성도, 희망도 함께 사라지는 법입니다. 이 새로운 왕은 히브리인들을 위협으로 간주하고, 그들을 억압하며 노동의 노예로 삼습니다.
그런데 여기서 질문이 생깁니다. 하나님은 어디 계셨을까요?
2. 잊혀진 하나님, 그러나 사라지지 않은 약속
출애굽기의 첫 장들은 마치 하나님이 침묵하신 것처럼 보입니다. 어떤 기적도, 개입도 없습니다. 히브리 사람들은 억압당하고, 아이들은 강물에 던져지고, 지도자는 보이지 않습니다. 그러나 이는 단순한 부재가 아니라 의도된 정적입니다. 마치 한밤중 가장 깊은 어둠처럼, 하나님의 개입은 아직 오지 않은 새벽을 준비하는 조용한 심호흡입니다.
“이스라엘 자손이 고된 노동으로 말미암아 탄식하며 부르짖으니... 하나님이 그들의 고통 소리를 들으시고...” (출 2:23–24)
여기서 중요한 동사가 등장합니다: ‘들으시고’. 하나님은 부르짖음을 ‘듣고’, ‘기억하고’, ‘돌아보시고’, ‘알아’주십니다 (출 2:24–25). 히브리어 원어에서 이 네 동사는 모두 하나님의 능동적인 반응을 뜻합니다. 하나님은 잊지 않으셨습니다. 다만 사람들은 기억하지 못했습니다.
3. 두 왕 사이의 갈등: 야훼 대 바로
출애굽기의 근본 구조는 단순히 히브리 민족과 애굽 사이의 이야기만이 아닙니다. 이 이야기는 두 ‘왕국’의 충돌입니다. 한쪽에는 보이는 제국, 애굽과 그 왕 바로가 있습니다. 다른 한쪽에는 보이지 않는 왕, 야훼 하나님이 계십니다.
“나 여호와가 바로보다 크다”는 선포는 열 가지 재앙이 하나씩 애굽의 신들을 꺾어내는 구조로 드러납니다.
예를 들어, 나일강이 피로 변하는 첫 번째 재앙은 애굽의 생명줄이자 신으로 숭배되던 강의 신을 무너뜨립니다. 개구리, 이, 파리 등 각 재앙은 그 당시 이집트 신들의 권세에 대한 도전이자 조롱입니다.
신약의 요한계시록 역시 이런 구조를 따릅니다. 눈에 보이는 제국 로마, 그리고 보이지 않는 하나님 나라.
4. “하나님이 그들의 신음을 들으시고” (출 2:24)
이 짧은 구절은 출애굽기의 핵심입니다. 하나님은 ‘신음’을 듣고 행동하시는 분이십니다. 언약을 ‘기억하신다’는 것은 단순한 기억이 아니라, 언약의 약속을 다시 이행하기 위한 움직임입니다.
히브리 사람들의 고통은 하나님 앞에서 의미 있는 외침이 됩니다. 그들의 ‘신음’은 기도가 되며, 그 기도는 하나님의 역사로 이어집니다. 이 구조는 신약의 수많은 장면을 떠오르게 합니다:
“예수께서 무리를 보시고 불쌍히 여기사…” (마 9:36)
“예수께서 울고 있는 마리아를 보시고 심령에 비통히 여기시고…” (요 11:33)
예수도 하나님의 신음을 들으시는 성품을 가진 분으로 이 땅에 오신 것입니다.
5. 출애굽기는 창세기의 후속편이다
많은 독자들이 출애굽기를 창세기와 별개의 책으로 읽지만, 사실 이 두 책은 하나의 이야기입니다. 창세기는 약속과 씨앗의 이야기였다면, 출애굽기는 그 약속의 성취를 위한 첫 단계입니다.
“아브라함에게 이르시되 네 자손이 이방에서 객이 되어 사백 년 동안 그들을 섬기리니…” (창 15:13)
출애굽기는 바로 이 약속이 실현되는 장면입니다. 아브라함과 이삭, 야곱의 하나님은 약속하신 대로 그 후손들을 구원하기 위해 애굽에서 불러내십니다. 그리고 이제 그 백성은 하나님의 직접적인 인도를 받으며, 언약 백성으로 재탄생하게 됩니다.
6. 신약과의 연결: 예수의 탄생과 모세의 구조
모세는 단순한 지도자가 아닙니다. 그는 예수의 예표로 읽힙니다. 마태복음은 예수의 어린 시절을 일부러 모세와 평행하게 묘사합니다:
“헤롯이 두 살 아래의 사내아이를 다 죽이려 하자, 예수의 가족은 애굽으로 피신하였다” (마 2:13–15)
이는 모세가 바로의 칼날을 피해 갈대상자에 숨겨졌던 장면과 겹칩니다. 애굽에서 죽음을 피한 모세처럼, 예수도 애굽에서 죽음을 피해 구원되셨고, 다시 나사렛으로 귀환합니다.
더불어, 모세가 시내산에서 율법을 받듯, 예수는 산 위에서 산상수훈으로 새로운 백성의 윤리를 선포합니다 (마 5장).
7. 끝나지 않은 이야기, 오늘을 향한 부르심
출애굽기는 단순히 고대의 민족사를 기록한 책이 아닙니다. 이는 지금도 진행 중인 이야기입니다. 하나님의 백성은 여전히 이 땅에서 억압받고 있으며, 하나님의 응답은 여전히 ‘신음’을 통해 시작됩니다.
“진리가 너희를 자유롭게 하리라” (요 8:32)
이 구절은 단순히 개인적인 구원을 말하는 것이 아닙니다. 출애굽의 맥락에서 보면, 하나님의 진리는 억압으로부터의 해방, 존재의 회복을 의미합니다.
우리는 모두 어떤 식으로든 애굽에 살고 있습니다. 그 애굽은 두려움일 수도 있고, 불의일 수도 있으며, 자기부정일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오늘도 고통의 신음에 응답하시는 분입니다.
✝️ 에필로그: 하나님은 우리 고통의 기억자
출애굽기는 단순한 민족적 신화가 아닙니다. 이는 기억에 관한 책이며, 언약에 대한 책입니다. 잊지 않으시는 하나님, 무명의 신음에도 응답하시는 하나님, 그분이 우리에게 기억의 푯대가 되어주십니다.
“내 백성을 가게 하라” (출 5:1)
이 외침은 과거의 명령이 아니라, 오늘 우리 삶을 향한 부르심입니다. 우리는 과연 지금 어떤 애굽에 얽매여 있는가? 그리고 우리는 누구의 신음에 귀 기울이고 있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