달라붙는 위치가 중요해!
분자의 구조는 같아도, 치환기가 어디에 달려 있느냐에 따라 전혀 다른 화학이 펼쳐진다. 위치는 단순한 배치가 아니라, 분자의 성격 그 자체다.
🎯 위치가 바뀌면 모든 게 바뀐다
이전까지 배운 내용들을 종합해 보면, 분자는 단순한 ‘무게’나 ‘종류’가 아니라 공간상의 배치에 따라 전혀 다른 반응을 보입니다.
치환기 하나, 결합 방향 하나만 달라져도 그 분자의 성질, 생물학적 기능, 반응 경로까지 모두 달라집니다.
화학에서 ‘위치’는 숫자가 아니라 리듬이다. 입체 배치는 그 분자의 움직임과 연결된다.
🔍 입체이성질체의 종류 복습
- 거울상 이성질체 (enantiomers): R/S, 비중첩 거울상
- 비거울상 이성질체 (diastereomers): 입체는 다르지만 거울상 아님
- 시스/트랜스 (cis/trans): 고정된 위치에서의 배치 차이
- E/Z 이성질체: 우선순위에 따른 배치 기준
오늘 이야기의 중심은 입체적인 위치가 반응성에 주는 영향입니다.
🌿 시스 vs 트랜스: 고정된 구조에서의 차이
이중결합은 회전이 불가능하기 때문에 각 치환기의 위치가 고정됩니다.
- 시스(cis): 같은 쪽에 치환기
- 트랜스(trans): 반대쪽에 치환기
예: 2-butene
CH₃–CH=CH–CH₃ → cis-2-butene / trans-2-butene
이 둘은 같은 화학식이지만, 끓는점, 밀도, 반응성 모두 다릅니다.
📌 분자 상호작용에서의 차이
- 시스: 극성 증가 → 분자간 인력 증가 → 끓는점 ↑
- 트랜스: 대칭 구조 → 극성 감소 → 끓는점 ↓
즉, 단순히 방향만 바꿨을 뿐인데 전체적인 성질이 완전히 뒤바뀌게 됩니다.
🔁 E/Z 표기법: 더 복잡한 구조에서는?
시스/트랜스 표기는 단순한 경우에만 적용됩니다. 보다 복잡한 치환기에서는 E/Z (Entgegen/Zusammen) 시스템을 씁니다.
- Z (같은 쪽): 우선순위 치환기들이 같은 쪽
- E (반대쪽): 우선순위 치환기들이 반대쪽
우선순위는 CIP 규칙에 따라 결정됩니다 (원자번호가 높을수록 우선)
🧬 생체 내 위치 선택성
생체 분자는 매우 입체 특이적입니다. 즉, 반응 대상 분자의 ‘모양’에 따라 반응 여부가 갈립니다.
예: 효소의 active site는 특정 입체 배치의 분자만 받아들이며, 반대 방향의 이성질체는 인식하지 못합니다.
→ ‘같은 분자’라고 해도 반응을 하지 않는다는 뜻입니다.
🔧 반응 경로에서의 입체적 위치
예: SN2 반응
친핵체가 후면에서 공격 → 기존 치환기는 반대쪽으로 떨어져 나감 → 입체 중심의 배치가 뒤집힘 (inversion)
예: E2 제거 반응
제거가 일어나려면 베타 수소와 탈리브 그룹이 ‘반대 방향(anti-periplanar)’에 있어야 함
반응이 일어날 수 있는가 아닌가는, 공간 배치의 조건이 맞는가 아닌가에 달려 있다.
💊 의약품에서의 입체 위치
많은 약물들은 입체 위치에 따라 전혀 다른 약효를 가집니다.
예: 알부테롤 (기관지 확장제)
- R-형: 치료 효과 있음
- S-형: 부작용 유발 가능
즉, 입체 중심 하나의 위치만 달라도 ‘효과 vs 독성’이 갈리게 됩니다.
🧠 입체 이성질체 예제 비교
예 1: 타르타르산
- 2개의 키랄 중심
- 거울상이성질체 + 메시형 비키랄 구조
예 2: 2,3-dibromobutane
- R,R / S,S → 거울상이성질체
- R,S → 메시형
📌 입체 이성질체 구분 연습
- [ ] 중심 원자 개수 파악
- [ ] 각 중심의 R/S 판별
- [ ] 거울상 여부 판단
- [ ] 전체 분자의 대칭성 확인
📎 마치며
‘분자 구조가 같다’는 말은 반만 맞습니다. 그 구조가 공간 속에서 어떻게 배치되었느냐가 진짜 중요한 이야기입니다.
입체적 위치의 차이는 반응의 가능성을 정하고, 생명과 비생명을 가르며, 효과와 부작용을 나누고, 존재와 존재하지 않음을 결정합니다.
위치, 그것은 단지 어디냐가 아니라 어떻게 살아가느냐의 문제다.
📎 한줄 요약
입체 이성질체에서 위치는 모든 걸 바꾼다. 그 배치는 반응, 인식, 기능, 생명 그 자체에 관여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