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기화학] (3) 입체화학 - 11. “분자도 오른손잡이 왼손잡이 있어?”

 

 

분자도 오른손잡이 왼손잡이 있어?

손처럼 생긴 분자들이 있다. 거울을 보면 똑같아 보이지만, 실제로는 절대 겹쳐지지 않는다. 그걸 우리는 ‘거울상 이성질체’라고 부른다.

👋 왼손과 오른손, 정말 똑같을까?

우리의 두 손은 모양이 거의 같고 서로 거울에 비친 모습처럼 느껴집니다.

하지만 직접 겹쳐보면, 완전히 겹쳐지지 않습니다. 즉, **거울상 관계이지만 비중첩(non-superimposable)**입니다.

이런 특성을 가진 분자를 '키랄 분자(chiral molecule)'라고 부른다.

🔍 키랄성(chirality)이란?

키랄(chiral)이란 ‘손(chir)’에서 유래된 말입니다. 어떤 물체가 자기 거울상과 겹쳐질 수 없다면, 그건 키랄한 것이다.

반대로, 거울상과 완전히 겹쳐지는 물체는 **비키랄(achiral)**입니다.

이 개념은 화학에서 **입체이성질체(stereoisomer)**를 이해하는 핵심이 됩니다.

🧪 분자 속의 키랄 중심

키랄 분자를 만드는 가장 일반적인 구조는 **탄소에 네 개의 다른 치환기가 결합된 경우**입니다.

     H
     |
R – C – OH
     |
   CH₃

이런 중심 탄소를 키랄 중심(chiral center 또는 stereocenter)이라고 부르며, 보통에는 탄소이지만 다른 원자도 될 수 있습니다.

🔁 거울상 이성질체 (enantiomers)

두 분자가 서로의 거울상이지만, 겹쳐지지 않는 경우 → **거울상 이성질체**입니다.

이들은 같은 화학식, 같은 결합, 같은 원자 배열을 가지지만 공간적인 구조가 달라집니다.

그리고 이 아주 작은 차이가 생물학적 기능에서 엄청난 차이를 만들어냅니다.

🎯 예시: 젖산 (lactic acid)

   H           OH
    \         /
     C —— C —— COOH
    /         \
 OH           H

이 구조는 **(R)-젖산**, **(S)-젖산** 두 가지 형태로 존재하며, 생체 내에서는 오직 한 쪽만 사용됩니다.

🌈 광학활성 (Optical Activity)

거울상 이성질체는 성질 대부분이 같지만, 빛과의 상호작용에서는 차이를 보입니다.

특히 **편광된 빛**을 통과시켰을 때, 그 빛의 진동면을 좌우로 돌리는 방향이 다릅니다.

  • 시계방향(+) → dextrorotatory (d- 또는 +)
  • 반시계방향(–) → levorotatory (l- 또는 –)

이러한 현상을 **광학활성(optical activity)**라고 하며, 회전 방향은 실험으로만 알 수 있습니다.

📎 R/S 표기법

거울상 이성질체를 구분하기 위해 **Cahn-Ingold-Prelog 규칙**을 사용하여 R(오른쪽), S(왼쪽) 형태로 구분합니다.

  1. 치환기들에 원자번호 기준 우선순위 부여
  2. 가장 낮은 우선순위를 뒤로 보냄
  3. 나머지 3개를 따라가며 방향 판단 (시계 ↔ 반시계)

이 방식은 입체 중심을 분명히 구분하고, 혼동을 줄여줍니다.

💊 생명과 키랄성

많은 생체분자들은 키랄성을 갖고 있습니다. 그리고 효소나 수용체는 이 거울상 이성질체를 구분해서 반응합니다.

예: 아미노산은 모두 L-형만 존재 설탕은 D-형만 인식 향기, 맛, 약효 등에서 결정적 차이를 만듭니다.

❗ 탈리도마이드 사건

1950~60년대 진정제/입덧약으로 사용되었던 탈리도마이드는 한 이성질체는 효과가 있었지만, 다른 이성질체는 기형을 유발했습니다.

이 사건은 유기화학뿐 아니라 제약 산업 전체에 키랄성 분리의 중요성을 각인시켰습니다.

📐 비키랄의 조건

모든 분자가 키랄한 것은 아닙니다. 다음과 같은 경우에는 **비키랄**입니다.

  • 거울상과 완벽히 겹칠 수 있을 때
  • 평면 대칭, 회전 대칭이 있을 때
  • 두 개의 거울상 이성질체가 반응성을 공유할 때

예: 1,2-dichloroethane은 회전 가능하므로 비키랄

🔎 기타 입체이성질체

거울상이 아닌 입체이성질체도 있습니다 → diastereomers

이들은 서로 거울상이 아니며, 물리/화학적 성질도 서로 다릅니다.

예: 시스–트랜스 이성질체, 2개 이상의 입체중심이 있는 분자

🧠 직관적 감각을 키우자

입체이성질체는 단순 암기로는 절대 익혀지지 않습니다. 항상 손으로 그려보고, 눈으로 돌려보고, 거울에 비춰보고, 종이접기로 확인해보는 과정이 필요합니다.

거울은 입체를 깨우는 도구다. 당신의 분자가 정말 겹쳐지는지 직접 확인해보자.

📎 마치며

분자도 손처럼 좌우가 있습니다. 그 차이는 작아 보이지만, 그 속에는 생명과 반응, 감각과 기능의 모든 차이가 숨어 있습니다.

거울에 비친 당신의 분자, 그 반대편을 함께 상상할 수 있다면 당신은 이미 입체화학의 중심에 들어온 것입니다.

📎 한줄 요약

키랄성은 분자의 좌우를 가르는 거울이며, 그 차이는 생명과 화학을 구분 짓는 결정적 요인이다.